핀란드는 더욱 심각했는데.
삶도 ‘오마카세(お任せ.그건 너무 비이성적인 일이군.
그러나 우주는 어쩌다 한 번씩 저자와 독자 사이에 공감의 기적을 허락한다.세상이 주는 삶을 그대로 받아먹어야 하나.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삶의 순간들을 포기해야 하는 나날들이 이렇게 늘어난다.
마침내 서울행 버스가 도착한다.왜 기적을 바라지 않겠는가.
2시간 동안 차를 타고 수원의 강연장까지 북토크를 들으러 우두두두 오는 거다.
스스로 통제하지 않는 삶은 남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탄 것과는 사뭇 다르다.그리고 그 공감이 육화(肉化)하는 거다.
자기 자식에게 험한 일을 면제해주려고 외국인 노동자를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아넣는 사회가 되어간다.자칭 엘리트들이 모여 자청해서 무책임해지는 사회에서.
스스로 통제하지 않는 삶은 남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탄 것과는 사뭇 다르다.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데.